기쁨을 함께 나누고, 슬픔과 불행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인생에 세 명만 있다 해도 그것은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이 있다. 거꾸로 말하면 친구의 기쁨과 불행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적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타인의 불행에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타인의 행운과 행복에 진심으로 기뻐할 줄 아는 자는 자신의 행복과 불행 또한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감정을 속이거나 과장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는 사람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있다면, 그것은 생존에 관한 것들이다. 먹는 것, 자는 것, 번식하는 것. 그리고 그 욕구가 채워지면 자신에게 또다른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것들을 갈망하게 된다. 안정적인 직장과 수입, 좀 더 나은 안전, 명예와 권력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고차원적인 욕구들은 대부분 한정되어 있고, 가지고 싶다고 해서 쉬이 가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돈, 권력, 명예 같은 것들은 내가 가지면 별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남이 가지고 있으면 엄청나 보인다. 내가 열심히 모아 둔 돈 1억 원을 가지고 집 한 채도 살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은 집을 가진 사람의 재력을 부러워하곤 한다. 하지만 그 집 한 채를 가진 사람은 자신이 가진 집은 그냥 살 집에 불과하며, 집을 두 채를 가지길 원한다거나, 더 좋은 집을 가진 사람에게 열등감을 느끼기도 한다. 결국 재력에 관한 한 만족감이라는 것은 내가 가진 재력의 크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만족감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 이라는 책에서는 만족감을 나의 욕구 대비 내가 가진 것의 크기로 설명한다. 가진 것이 많더라도 욕구가 많다면 불만족스러운 것이고, 가진 것이 적더라도 내 욕구 자체가 적다면 만족감은 커지는 것이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오래된 속담은 참 많은 상황에서 나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듯 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가진 것이 많아보이지만, 타인이 가진 몇가지들이 좋아보이는 순간 타인의 단점이나 그것을 얻기 위해 했던 노력들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그 장점만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러한 부러운 감정이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여러 다른 문제를 만들 여지가 다분하다. 부러움이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생기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감정이고, 나도 그 사람처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기 때문. 하지만 그 감정이 부정적인 다른 감정을 유발하는 것이 문제다.
저 사람이 가진 것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쌓은 것일 것이라고 막연히 추정하고, 그것을 비난하거나, 부정적인 방법이 아니더라도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으니 나누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부자가 된 사람은 부정을 저질렀을 테니 엄벌에 처해야 하며, 부자는 가진 것을 좀 빼앗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상대적 빈곤에 대한 불만족을 부자에게 화살을 돌려 표출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타인을 비난하는 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성찰하는 것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특히나 익명성이 확보되는 공간에서는 더욱 그렇다. 자신이 다치지 않을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마음 놓고 타인을 비방하고, 없는 말도 지어서 하게 된다. 이것이 다 자신의 마음 속 불만족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나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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