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참는다.
흔히 이기적인 사람들을 욕할 때 쓰곤 하는 말이다. 사회의 정의, 불평등에는 무관심하고 나에 대한 작은 불이익은 그것이 설령 사회 정의에 부합한다 해도 불쾌함을 표출하고, 그 불이익이 실현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유년시절에 이기적이었다. 누나보다 내가 더 맛있는 반찬을 많이 먹길 원했고, 용돈도 누나랑 똑같이, 혹은 더 받길 원했다. 실제로도 남아선호사상이 강하게 남아있었던 조부모님은 나를 더 예뻐했던 것 같다. 아빠도 그랬다. 그렇게 내가 부당한 이익, 누나입장에서는 불이익을 안겨주면서 어린시절을 보내면서, 나는 그 문제에 대한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냥 내가 받은 건 내가 예쁘고, 잘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공부도 더 잘하고, 말도 더 잘 듣고 그랬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정의롭지 못한 생각이었다. 적어도 누나는 나와 동등한 부모의 사랑과 조부모의 사랑, 그리고 경제적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 더 나아가 누나는 나보다 나이가 두 살이나 더 많으니까 용돈을 더 받아야 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나는 이제 성인이고, 사회 불평등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몇 번 해본 적이 있다. 기회의 평등, 결과의 평등, 과정의 평등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어느정도까지가 적당한 불평등 해소의 선인지 고민해본다. 하지만 이런 사색과 현실세계에서 나의 육감적 판단과 본능은 다른 방향으로 표출된다.
부동산 이슈가 이렇게 뜨거운 감자로 올라왔다. 부동산 가격 폭등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고, 이에 대한 목소리들이 너무나 많다. 특히나 아파트 가격 상승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깃거리를 준다. 정부 정책 하나에 수 십개의 해석과 전망이 쏟아지는 중이다.
나는 지금 아파트 가격 폭등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 중 하나가 아파트 공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재 서울시가 활용할 수 있는 부지에 적당히 좋은 아파트들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골프장 부지 등을 이용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 일견 수긍한 바도 있다. 물론 그린벨트에 대해서는 생각이 복잡하다.
이 와중에 내가 사는 지역 근처에 있는 십수년 째 빈 공터였던 땅이 공공주택 공급을 위해 쓰일 지도 모른다는 기사가 났다. 근데 그 기사를 보니 마음이 참 편치가 않았다. 공공주택을 내가 사는 지역에 짓겠다고? 이걸 반대해야 하는건가. 평소 나의 생각대로라면 적당히 좋은 입지에 공공주택을 다량 공급하고, 그래서 공급난이 해소되면 부동산 정책의 일부 성공을 견인할 수 있지 않나. 근데 내 마음은 그렇질 않았다. 우리 집앞엔 안했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다.
평소에 내가 가진(가졌다고 생각한) 가치관과 나의 불이익이 충돌하면서 생기는 마음의 간극이 나를 더 불편하게 했다. 나는 스스로 불의, 불평등을 좌시하지 않는다 생각하는데, 나의 불이익과 정의가 충돌한다면 나는 얼마만큼 양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