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동
시계를 수리하러 다녀왔다. 맡긴건 3주 전인데, 통 연락이 없길래 연락해봤다. 전화를 받은 사장님은 시계가 어디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떡하지? 작은 가게에서 장사를 하시는 분인데, 내가 너무 대비도 없이 시계를 맡기고만 왔나 싶은 걱정이 들었다. 혹시나 내 시계가 분실되었으면 어떡하나 싶었다. 시계가 너무 많아, 그 중에서 찾기가 힘들었다고 하셨고, 결국 잘 찾아왔다. 수리가 다 되면 연락주신다 하셨는데, 그것도 연락이 안왔다. 뭐 그래도 잘 찾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싶다. 다시 잘 돌아가는 시침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좋아졌다. 묵은 짐을 하나 내려놓은 느낌이었다.
3주 전 그 시계 가게를 찾기 위해 종로에서 한참을 헤멨다. 탑골공원에서부터 그 좁은 골목길을 구불구불 지나가는데, 어디가 어딘지 헷갈려서 방향을 잃기도 했다. 핸드폰으로 지도 어플을 켜서 가는데도 그랬다. 동서남북으로 쭉쭉 뻗은 길이 아니었다. 무질서한 그 공간은 핸드폰 어플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이었다. 이곳은 몇십년 간 시간이 제대로 흐르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아주 어릴 때 보던 상가 건물 모습과 비슷했고, 10여년 전 처음 청계천 상가를 돌아다녔던 그 때와도 비슷했다. 멈춰있다. 사람만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낡은 건물들이 가득했던 곳이 몇 년 만에 높은 아파트 빌딩으로 채워지기도 했고, 낡은 아파트가 새 아파트가 되어 자신의 위용을 뽐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 종로는 변하질 않았다. 아예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 넓은 광장이 생기기도 하고, 어르신들을 위한 편의시설도 생겼다. 지하를 넓게 파서 공영주차장을 만들기도 했다. 이게 다 도시계획의 일부니까. 낡고 위험한 것들은 부수고 새롭고 효율적인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게 시민들 입장에서 더 좋겠다. 하지만 그건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들이었다. 상가들, 그러니까 종로에 터를 잡고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질 않았다. 이곳을 다 엎어버리고 새로 건물을 세운다거나, 도로를 정비하기 위해 가로세로 줄자를 들이밀 수도 없는 곳이다. 익숙한 삶의 터전이고, 바꿀 이유를 못찾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경제 논리로 보자면 돈이 문제일 것이고, 그곳 사람들 또한 변화를 연호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 시계는 2년 전쯤 고장났었다. 눈이 며칠 째 내리던, 그래서 밑은 얼음이 얼고 위엔 뽀드득거리는 눈이 쌓여있던 날 미끄러지며 넘어졌다. 손 쓸 수 없이 넘어지는 바람에 시계를 정통으로 바닥에 찧었다. 시계침 모두가 시계 안에서 나뒹굴었고, 시계 무브먼트는 멀쩡히 돌아갔지만 그걸 표시해줄 시침이, 분침이 길을 잃었다. 고쳐야지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고치는 데 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이렇게까지 오래 걸린 데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손목시계가 시간을 제대로 가르키지 않아도 내가 살아가는 데에는 문제가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계를 패션으로 차지, 시간을 확인하려고 차고 다니지 않았다. 핸드폰이 있으니까 문제 없었다. 핸드폰이 항상 있으니까 괜찮았다.
그렇게 시계는 고장났었다. 엄밀히 말하면 자기의 일을 제대로 하고 있었지만, 그걸 보여줄 수 없는 상태였다. 볼 사람도 없었고.
그런데 고쳐진 시계를 차고나니 시간이 보였다. 다시 일하는 게 느껴졌다. 가까이 귀를 대면 들리던, 톱니바퀴가 서로 따각따각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게 다시 느껴졌다. 반가웠다.